소장의 작성과 제출업무를 위임받은 법무사가 주소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의뢰인이 변론기일소환장 등을 제대로 송달받지 못했더라도 직접 소송기록을 열람해 피고의 답변서에 대한 반박 준비서면을 내는 등 어느 정도 공격과 방어를 했다면 법무사에게만 잘못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9월22일 최모(56)씨가 '주소를 잘못 기재해 재판에 졌다'며 법무사 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2006다32569)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이같은 취지로 사건을 전주지법 합의부로 되돌려 보냈다.
원심인 전주지법 재판부에 따르면 최씨는 신모씨가 윤모씨에 대해 갖고 있던 4000만원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양수받아 2001년 11월 윤씨를 상대로 양수금 지급소송을 제기하며 소장의 작성과 제출을 법무사인 정씨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정씨가 소장을 작성하면서 신씨의 주소를 최씨의 주소로 잘못 기재해 법원에 제출하는 바람에 최씨는 변론기일소환장이나 소송서류 등을 제대로 송달받지 못했고, 최씨가 불출석한 상태에서 변론이 진행된 끝에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당시 변론기일소환장 등을 등기우편으로 송달했다.
최씨가 뒤늦게 판결선고 사실을 알고 추완항소를 제기했으나, 각하되자 법무사 정씨를 상대로 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 원심에서 위자료 300만원을 주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선고되자 정씨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최씨는 답변서나 소송안내서 등을 송달받지는 못했지만, 법원에서 양수금 청구사건의 기록을 열람한 후 피고의 답변서에 대한 반박 준비서면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정씨는 법무사로서 최씨로부터 소송수행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소장의 작성 및 제출업무만을 위임받았을 뿐"이라며, "소송의 진행상황을 확인해 변론기일에 출석하거나 적절한 공격 · 방어를 해야 할 의무는 어디까지나 최씨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비록 정씨가 최씨의 주소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최씨가 답변서를 송달받지 못하는 등 차질이 빚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최씨가 소송기록을 열람한 후 답변서에 대한 반박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등 어느 정도 공격 · 방어를 하였던 만큼, 최씨가 재판을 받을 기회 자체를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소송기록을 열람한 최씨로서는 소장에 주소가 잘못 기재돼 있고, 이 때문에 소송서류가 정상적으로 송달되지 못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소보정서를 제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이를 방치하는 바람에 변론기일소환장 등을 제대로 송달받지 못하게 된 것이고, 그 결과 패소판결이 확정되기에 이르렀다"며, "소송에 제대로 응소를 하지 못한 것이 오로지 정씨의 잘못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최씨가 4000만원을 청구하며 구체적으로 재산적 손해와 위자료로 각각 얼마씩을 청구하는 것인지 그 내역을 밝히지 않고 있음에도 원심 재판부가 석명을 통해 최씨의 청구내역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아니한 채 위자료 청구를 받아들였음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원심 재판부는 "정씨의 잘못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최씨가 승소하였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재산적 손해에 관한 최씨의 청구를 배척하고, 다만 "정씨의 잘못으로 최씨가 재판절차에 참여해 적절하게 공격과 방어를 할 권리 내지 기대를 현저하게 상실하게 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추인된다"며, 위자료 300만원을 주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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